"곧 달러가 무너진다"는 말, 한 번쯤 들어보셨을 겁니다. 중국이 위안화 결제를 밀어붙이고, 러시아는 달러 자산을 투매했으며, 브릭스는 2024년 정상회의에서 공동통화 창설을 재차 선언했습니다. 금 매입량은 역대급이고, 중앙은행들은 달러 비중을 조금씩 줄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달러는 여전히 안 죽습니다. 왜일까요. 대부분의 분석은 "달러는 기축통화니까요"라고 답합니다. 기축통화이기 때문에 기축통화라는 순환논리입니다. 진짜 이유는 전혀 다른 곳에 있습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인 1944년 7월, 44개국 대표 730명이 미국 뉴햄프셔주의 작은 마을 브레턴우즈에 모였습니다. 유럽은 폐허였고, 전후 세계 경제 질서를 새로 짜야 했습니다. 회의는 3주 만에 결론을 냈습니다.
"35달러를 내면 금 1온스로 바꿔준다. 다른 나라 통화는 달러에 고정한다." 당시 미국은 전 세계 금의 약 70%를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약속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나라였습니다. 이 순간부터 달러는 단순한 미국 돈이 아니라 세계의 돈이 됐습니다.
그런데 1971년 8월, 닉슨 대통령이 이 약속을 일방적으로 깨버립니다. 베트남 전쟁 비용으로 달러를 너무 많이 찍어내 금 보유량이 바닥나자, TV에 나와 담담하게 선언했습니다. "달러를 더 이상 금으로 바꿔주지 않겠습니다." 경제학자들은 이를 닉슨 쇼크라고 부릅니다. 당시 전 세계가 충격을 받았고, 수많은 전문가들이 "이제 달러가 무너질 것"이라 했습니다.
그런데 달러는 안 무너졌습니다. 오히려 더 강해졌습니다. 왜일까요. 여기서 유명한 명언 하나를 먼저 들어야 합니다.
왜 큰 빚을 진 사람이 오히려 갑이 될까요. 실제로 있었던 일로 설명드리겠습니다.
1990년대 트럼프는 은행에서 수십억 달러를 빌려 초호화 요트 트럼프 프린세스를 구입했습니다. 어느 날 분기 보험료 청구서가 날아왔습니다. 트럼프 CFO는 그 청구서를 대출 담보 은행에 그대로 전달했습니다. 메모 한 줄과 함께. "요트가 보험 없이 침몰하면 당신 담보물이 사라집니다." 은행이 보험료를 대신 냈습니다. 빌린 돈이 너무 크면, 갚지 못할 경우 은행도 함께 망합니다. 그래서 은행은 오히려 그 채무자를 살리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섭니다. 빚이 클수록 채무자가 갑이 됩니다.
지금 미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채무자입니다. 연방부채만 36조 달러. 외국인이 보유한 미국 국채는 약 8조 달러가 넘습니다. 일본이 약 1조 1,000억 달러, 중국이 약 7,600억 달러, 영국·룩셈부르크·케이만제도 순으로 줄줄이 미국 국채를 들고 있습니다.
이게 왜 미국이 갑인 위치냐고요. 구조를 보면 바로 보입니다. 만약 미국이 흔들려 달러 가치가 폭락하면 어떻게 될까요. 일본이 들고 있는 1조 달러짜리 국채가 순식간에 반 토막 납니다. 중국도, 사우디도, 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미국이 망하면 미국 국채를 쥔 나라들이 먼저 망합니다. 트럼프의 요트 이야기와 구조가 완전히 똑같습니다.
이 나라들은 이제 달러가 싫어도, 달러를 지켜야 자기 자산을 지킬 수 있습니다. 결국 미국의 채권자들이 달러를 지키는 구조입니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갑니다. 미국 밖에서 달러로 빌린 돈이 13조 달러를 넘습니다. 신흥국 정부들, 기업들이 금리가 쌀 때 달러로 대출을 받았습니다. 이 달러 빚이 있는 한 이 나라들은 달러를 버릴 수가 없습니다.
탈달러를 외치는 나라들 중 상당수가 동시에 달러 빚을 지고 있습니다. 입으로는 "달러를 버리자" 외치면서, 실제로는 달러를 더 끌어모아야 하는 구조에 묶여 있습니다.
▲ 중국은 탈달러를 외치면서도 미국 국채 2위 보유국이다 — 미국이 망하면 중국도 함께 망한다
브릭스(중국·러시아·인도·브라질·남아공 등)가 달러 대신 쓸 공동통화를 만들겠다고 합니다. 2024년 러시아 카잔 정상회의에서도 재차 선언했습니다. 가능할까요.
기축통화가 되려면 반드시 넘어야 할 구조적 벽이 있습니다. 트리핀 딜레마입니다. 1960년대 경제학자 로버트 트리핀이 정확히 짚어낸 이 역설은 단순합니다. 세계에서 쓰이는 기축통화가 되려면, 그 통화를 전 세계에 계속 뿌려야 합니다. 뿌리려면 그 나라가 수입을 많이 해서 돈을 밖으로 내보내야 합니다. 즉 무역적자를 구조적으로 내야 합니다.
미국이 수십 년간 무역적자를 내면서 세계에 달러를 공급해왔습니다. 미국이 물건을 사면서 달러를 뿌린 겁니다. 그런데 브릭스 핵심 멤버들을 보면 어떻습니까. 중국은 세계 최대 무역흑자국입니다. 러시아도 에너지 수출로 흑자입니다. 사우디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도 중국이 워낙 크니까 위안화가 되지 않을까요?" 핵심은 신뢰가 아니라 금고의 크기입니다.
달러로 돈을 벌면 어디에 보관할까요. 미국 국채를 삽니다. 미국 국채 시장은 규모가 27조 달러입니다. 하루 거래량만 1조 달러가 넘습니다. 어떤 나라든, 어떤 기업이든 원할 때 마음껏 넣고 뺄 수 있습니다. 이 유동성이 달러를 안전자산으로 만드는 진짜 이유입니다.
위안화로 번 돈은 어디에 넣을까요. 중국 국채를 사면 되는데, 중국은 외국인 자금 이동을 정부가 통제합니다. 필요하면 묶어둘 수 있습니다. 실제로 2022년 서방이 러시아 달러 자산 3,000억 달러를 동결했을 때, 전 세계 많은 나라들이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중국도 저렇게 우리 자산을 묶을 수 있지 않나?"
아이러니하게도 러시아 자산 동결이 위안화 국제화의 발목을 잡았습니다. 달러의 무기화가 위험하다는 걸 보여줬지만, 동시에 권위주의 정부 통화에 대한 불신도 함께 키웠습니다. 그 결과 위안화의 글로벌 결제 비중은 2024년 기준 여전히 3~4% 수준. 달러의 47~48%와는 비교가 안 됩니다.
▲ 중국은 2000년대 초부터 위안화 국제화를 추진했지만, 현실은 달러의 10분의 1에도 못 미친다
여기까지 읽으면 달러는 절대 안 죽겠다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습니다.
역사를 보면 기축통화는 외부 공격으로 무너진 적이 없습니다. 스스로 무너졌습니다. 달러 이전 기축통화는 영국 파운드화였습니다. 19세기 내내 파운드가 세계를 지배했습니다. 영국 해군이 전 세계 바다를 장악했고, 런던 금융시장이 세계의 돈을 굴렸습니다. 그런데 1914년 1차 세계대전이 터지면서 영국은 막대한 전쟁 비용을 미국에서 빌리기 시작했습니다. 2차 대전이 끝날 때쯤 영국의 미국 부채는 310억 달러(현재 가치로 수조 달러)에 달했습니다. 그 순간 파운드의 시대가 조용히 끝났습니다. 누가 파운드를 공격해서 무너진 게 아닙니다. 영국이 스스로 재정을 망가뜨린 겁니다.
지금 미국을 보겠습니다. 연방부채가 36조 달러를 넘었습니다. GDP 대비 120% 수준입니다. 이자 비용만 연간 1조 달러 이상. 국방비보다 많습니다. 매년 적자가 쌓이는데 줄일 정치적 합의가 없습니다. 트럼프 1기에도 적자가 늘었고, 바이든 때도 늘었고, 트럼프 2기에도 늘고 있습니다. 공화당도 민주당도 지출을 줄이는 데 표를 걸려 하지 않습니다.
▲ 공화당이든 민주당이든, 미국의 부채는 단 한 번도 줄지 않았다
투자 얘기로 넘어가겠습니다. 세 가지입니다.
첫째, 단기 달러 약세 베팅은 하지 마세요. "곧 달러가 무너진다"는 전망은 지난 20년간 계속 틀렸습니다. 2011년 금 가격이 사상 최고가를 찍을 때도, 2018년 위안화 국제화가 가속화될 때도, 2022년 러시아 달러 자산 동결 이후에도 탈달러 수혜를 노린 투자는 대부분 손실을 봤습니다. 달러가 희석되는 건 맞지만 그 속도는 아주 느립니다. 타이밍을 잘못 잡으면 10년을 기다려야 할 수도 있습니다.
둘째, 달러 자산 올인도 위험합니다. 미국의 재정적자 구조는 실재하는 위험입니다. 10~20년 시계로 보면 달러의 위상이 지금 같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영국 파운드도 서서히 무너지다가 어느 시점에 갑자기 끝났습니다. 2024년 일본 엔화가 160엔까지 폭락하며 구매력이 반 토막 났을 때, 엔화 자산만 보유했던 일본 국민들이 어떤 충격을 받았는지를 기억하셔야 합니다.
셋째, 금을 포트폴리오에 일정 비중 담아두는 게 합리적입니다. 세계 중앙은행들은 2022년부터 3년 연속 역대급으로 금을 사들이고 있습니다. 2023년 한 해에만 각국 중앙은행이 1,037톤의 금을 매입했습니다. 달러 대신 쓸 통화를 못 찾겠으니, 누구도 마음대로 찍어낼 수 없는 금으로 눈을 돌리는 겁니다. 중앙은행들이 사는 걸 개인이 따라 하는 건 나쁜 전략이 아닙니다.
달러 강세라 지금 미국 주식을 사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그 고민 자체가 함정입니다. 지금이 고점인지 저점인지를 맞히려는 시도는 전문가들도 대부분 실패합니다. 실제로 JP모건이 분석한 데이터에 따르면, S&P 500에서 수익률 상위 10일을 놓친 투자자의 20년 수익률은 매일 보유한 투자자의 절반에도 못 미쳤습니다. 그 '상위 10일'이 언제인지는 아무도 미리 알 수 없습니다.
환율은 더 심각합니다. "지금 달러가 비싸니까 환율이 내려갈 때 사야지"라고 생각하시는 분들, 그 판단을 전문가들도 못 합니다. 숫자로 보겠습니다. 국제금융센터가 최근 10여 년간 주요 통화의 대미달러 환율 방향성 예측 적중률을 분석했더니 50% 내외에 불과했습니다. 쉽게 말해 동전 던지기와 다를 바가 없다는 뜻입니다. 세계 최고의 경제학자들이 수십 개의 지표를 돌려도 달러가 오를지 내릴지 찍는 것과 다름없는 결과가 나옵니다.
더 충격적인 연구도 있습니다. 1983년 미국 경제학자 미스(Meese)와 로고프(Rogoff)는 논문 하나로 경제학계에 충격을 줬습니다. "어떤 정교한 환율 예측 모델도, 단순히 오늘 환율이 내일도 그대로일 것이라고 가정하는 것(랜덤워크)을 이기지 못한다." 40년이 지난 지금도 이 결론은 뒤집히지 않았습니다. 노스웨스턴대 켈로그 경영대학원 연구팀이 실질환율을 이용한 새로운 예측 방법을 개발했지만, 결론에 이런 단서를 달았습니다. "단기 예측에는 작동하지 않는다. 3~10년 뒤에나 맞힐 수 있다고." 1년 안에 환율이 오를지 내릴지는 전문가도 모릅니다. 그냥 모릅니다.
실제 사례를 보겠습니다. 2021년 초 국내외 대부분의 증권사와 외환 전문가들은 "달러 약세, 원화 강세"를 전망했습니다. 그해 실제로 일어난 일은 정반대였습니다. 2022년에는 달러가 폭등해 원달러 환율이 1,400원을 넘어섰고, 전망을 맞힌 기관은 극소수였습니다. 환율 타이밍을 재고 있는 동안 시장은 이미 움직여 있습니다.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매일 또는 매월 꾸준히 사는 것입니다. 최고점에서도 사고, 최저점에서도 사다 보면 결과적으로 평균적인 가격에 달러 자산을 매수하게 됩니다. 이것을 달러코스트애버리징(DCA, Dollar Cost Averaging)이라고 합니다. 여기에 한 가지만 더하면 됩니다. 52주 최저가가 오는 날은 비중을 한 번씩 늘리는 것입니다. 시장이 공포에 빠져 모두가 팔 때, 조금 더 사는 것. 이 두 가지 규칙만 지켜도 대부분의 개인 투자자보다 좋은 결과를 냅니다.
역사상 기축통화가 교체되는 데는 평균 30~50년이 걸렸습니다. 파운드에서 달러로의 전환도 1차 대전부터 시작해 브레턴우즈 체제가 완성된 1944년까지 약 30년이 걸렸습니다. 달러의 희석은 이미 진행 중일 수 있습니다. 다만 그 속도가 얼마나 빠를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니 특정 시나리오에 올인하지 않고 분산해두는 것, 그게 지금 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응입니다.